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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처리이론, 왜 기억하지 못할까?

by 사이콜로그 2026. 8. 26.

얼마 전 누군가가 제게 아이들의 전화번호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순간 머릿속으로 번호를 떠올려 보려고 했는데 잘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휴대전화를 꺼내 연락처에서 아들의 이름을 검색하고 전화번호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이 가끔 있습니다. 

아들과 딸의 전화번호를 제가 정확하게 외우고 있지 못하거든요. 

조금 창피하기도 합니다. 

내 아이들의 전화번호인데도 누군가 물어보면 바로 알려주지 못하고 휴대전화부터 찾아야 한다는 것이 괜히 제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문득 예전의 저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스마트폰이 지금처럼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엄마와 아빠, 동생들의 전화번호까지 몇 개씩 외우고 있었습니다. 

전화번호를 찾는 것보다 직접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거는 것이 더 편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연락처에서 이름만 찾으면 바로 전화를 걸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저는 정말 기억력이 나빠진 것일까요?

정보처리이론을 찾아보면서 이 질문을 조금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기억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정보처리이론은 인간의 인지과정을 컴퓨터가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관점입니다. 

컴퓨터가 정보를 입력받아 처리하고 저장한 뒤 필요할 때 다시 꺼내 사용하는 것처럼, 인간 역시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며 기억 속에 저장하고 필요할 때 다시 떠올린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를 접합니다.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누군가와 나눈 대화를 기억하며, 약속 시간이나 해야 할 일을 기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모든 정보를 똑같이 기억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정보는 잠시 머릿속에 머물다가 사라지고, 어떤 정보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정보처리이론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감각기억, 단기기억, 장기기억 등의 개념을 사용합니다. 

 

모든 정보가 기억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보고 듣는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장기적인 기억으로 저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는 감각을 통해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계속해서 자세히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중에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정보가 선택되고, 이후 더 깊이 처리되면서 기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자동차를 보지만 그 자동차의 색깔이나 번호를 모두 기억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자동차와 비슷한 차량을 발견하면 유난히 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정보처리이론에서는 주의와 정보의 처리 과정이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생각해 보면 전화번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전화번호를 직접 눌러야 했기 때문에 반복해서 보고, 입력하고, 사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전화번호가 기억 속에 자리 잡았던 것이겠지요.

 

스마트폰이 내 기억을 대신해 주고 있다

제가 아들과 딸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전화번호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전화번호를 기억해서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스마트폰이 대신 기억해 주기 때문입니다.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을 찾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전화를 걸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전화번호를 기억한다. → 번호를 직접 누른다 → 전화를 건다

라는 과정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이름을 검색한다. → 이름을 누른다 → 전화를 건다

정도로 간단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화번호 자체를 반복해서 떠올리고 사용할 기회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제가 아이들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단순히 '기억력이 나빠졌다'고만 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제가 정보를 사용하는 환경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기억하는 것과 잊는 것의 차이

정보처리이론을 살펴보면 기억은 단순히 머릿속에 정보를 넣어두는 과정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정보를 받아들이고, 주의를 기울이고, 의미 있게 처리하고, 저장한 뒤 필요할 때 다시 꺼내는 과정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기억 속에 저장된 정보도 필요할 때 바로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분명히 아는데 생각이 안 나는' 순간도 이런 기억의 특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 

또한 어떤 정보는 반복해서 사용하고 의미를 부여할수록 오래 기억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는 정보는 점점 떠올리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기억은 단순히 많이 저장할수록 좋은 능력이라고만 말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얼마나 자주 사용하며,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느냐 역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

정보처리이론을 찾아보기 전에는 아이들의 전화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며 가끔은 걱정했습니다. 

'내가 예전보다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 정보처리이론을 알아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않는 것은 기억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기억해야 할 필요가 줄어든 결과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달라지는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건망증을 나이 탓으로만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어떤 정보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보처리이론을 공부하면서 저는 기억이라는 것이 단순히 무언가를 잊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필요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처리하고, 기억 속에 저장하며, 필요할 때 다시 꺼내 사용합니다. 

그리고 시대가 변하면서 기억을 도와주는 도구도 함께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머릿속에 저장해야 했던 전화번호를 이제는 스마트폰이 대신 기억해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누군가 제게 아이들의 전화번호를 물어봤을 때 휴대전화를 꺼내더라도 너무 창피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쩌면 저는 기억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기억을 조금 덜 사용해도 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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